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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사이플즈 15기 케노시스 독후감- 목요반 최규철 포이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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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은
조회 446회 작성일 26-04-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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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처음 집어 들 때 큰 기대는 없었다. 기독교 서가에서 흔히 보이는 제목들, 기쁨, 은혜, 충만  ,의 변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말도 어디선가 수없이 들은 말이었다. 그런데 읽고 나서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마도 그건 이 책이 '채움'을 설파하는 책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나'로 가득 차 있는지를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고성준 목사는 빌립보서 2장을 중심으로 '케노시스(Kenosis)', 즉 예수님의 자기비움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이신 분이 모든 특권을 내려놓고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신학적으로는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것을 단순한 교리로 두지 않고, 오늘 나의 내면 상태를 진단하는 거울로 꺼내든다. 그 지점에서 책은 갑자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저자가 짚어내는 현대인의 자화상은 낯설지 않다. 더 높이, 더 많이, 더 크게. 세상은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 교회 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번영을 복으로 이야기하고, 성공한 간증이 무대 위에 오른다. 나 역시 그 흐름 속에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안의 자아는 여전히 인정받기를 원하고, 대접받기를 원하며, 적어도 이 정도는 누려야 한다는 권리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자는 그것을 "더러운 물이 담긴 컵"에 비유한다. 아무리 좋은 것을 부어도, 이미 가득 찬 자아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실 공간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 비유가 날카롭게 꽂혔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으면서도 왜 내 안이 자꾸 메마른 것 같았는지 그 이유를 처음으로 언어화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은혜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비워지지 않은 것이었다.


이 책의 또 다른 핵심은 '기쁨'이다. 저자는 케노시스가 단순히 자기부정의 금욕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기쁨으로 가는 역설적인 길임을 강조한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것 같은 그 순간에  가장 충만하셨다는 것.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 채워졌을 때, 그것이 진짜 기쁨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지쳐 있을 때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종종 공허하게 들린다. 상황이 이런데 무슨 기쁨이냐고.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기쁨은 상황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낙심과 무기력을 파쇄하는 기쁨이며, 사람들의 상식을 뒤엎는 기쁨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기쁨의 조건이 '비워짐'이라는 것이다. 기쁨을 더 채우려 애쓰는 게 아니라, 기쁨이 들어올 수 있도록 나를 비우는 것. 그 순서가 뒤집히는 데서 이 책의 반전이 시작된다.

개인적인 내면의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는 교회 공동체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간디의 말이 인용된다. "예수를 사랑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그 말이.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동네북처럼 얻어맞는 현실, 그 이유가 케노시스의 부재라는 진단은 무겁게 다가온다. 비움이 아니라 채움을, 낮아짐이 아니라 높아짐을, 희생이 아니라 영광을 추구하는 모습이 교회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이 부분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시에 슬펐다. 알면서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고, 진단은 명확한데 처방이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 무기력함도 어쩌면 나 자신이 아직 비워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었을 때, 마음이 가벼워졌다기보다는 조용해졌다. 해결책이 눈앞에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어디선가 막혀 있던 것에 이름이 생긴 느낌이었다. '나'로 가득 찬 나. 비워지지 않은 채 기쁨을 찾아 헤맨 나.

케노시스는 어렵다. 자아를 비운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걸 조용히 말해준다. 예수께서 자기를 비우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있는 곳에서 비움은 고통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지쳐 있는 나에게, 이 책은 "더 잘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 번 내려놓아 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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